복음적 삶(1)ㅣ양민철 목사ㅣ금요저녁묵상_2020.8.7

관리자
2020-08-07
조회수 123

복음적 삶(1)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 4:9~11)


이런 말이 있다. “머리에서 시작한 신학이 가슴으로 내려와 불붙어야 하며, 가슴에 불붙은 신학은 손과 발로 내려와 현장에서 삶이 되어야 한다." 잉태된 생명이 출생을 통해 실체를 드러내듯, 우리의 신학과 신앙은 삶이 되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신앙은 단지 '앎'이 아니라 '삶'이다.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복음적 삶을 살아야 한다. 복음적 삶을 위해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1. 복음이란 무엇인가?


복음적 삶은 복음 안에서 발견되는 삶이다. 복음적 삶을 이해하려면 먼저 '복음'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간 복음을 다섯 가지 키워드로 설명해왔다. 1) 복음은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친히 이루어 놓으신 ‘구원’의 사건이다. 2) 그 구원은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 놓으신 구원이다. 3) 가장 결정적인 구원의 행위는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죽으심이다. 4) 십자가에 달려죽으신 이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라는 증거는 ‘부활’이다. 5)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나의 죄문제 해결을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 


왜 하나님께서는 나를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셨는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 3:16). 하나님께서는 나를 사랑하사 나를 구원하기로 결정하셨다. 나의 구원을 위해 예수님을 십자가 대속의 제물로 내놓으셨다. 그리고 나를 부르셨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없었다면 ‘구원의 사건’은 없었을 것이고 ‘예수님이 오실 일’도 없었을 것이며 ‘십자가에 죽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사랑하시기에 이 모든 일들이 가능했다. 복음 안에서 발견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사랑’이다. 그렇다면 복음적 삶이란 무엇인가? 사랑하며 섬기는 삶이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그의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안에서 우러나오는 삶이 복음적 삶이다. 


어떤 신자는 술과 담배를 하지않고, 예배를 꼭 꼭 드리며, 개인기도와 묵상의 생활을 한다. 그런데 사랑하지 않는다. 미움과 갈등으로 산다. 정죄와 혐오를 조장한다. 이런 사람은 과연 복음적 삶을 사는 것인가? 절제하며 하나님 앞에 머무는 경건은 잘 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랑하며 섬기는 경건이 없다면 복음적 삶이 아니다. 종교생활을 잘 할 뿐 복음적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복음적 삶이란? 사랑하며 섬기는는 삶이다. 복음적 삶을 위한 두 번째 질문을 던진다.


2. 어떤 사랑인가?


사람이 사는 곳에는 사랑이 존재한다. 착한 사람에게 사랑이 있고 못된 사람에게는 사랑이 없는가? 그렇지 않다. 스탈린에게도, 히틀러에게도, 연쇄 살인범에게도 사랑이 있다. 도둑에게도 사랑이 있고, 강도에게도 사랑이 있다. 모든 사람의 내면에 ‘사랑’이라는 동기가 항상 존재한다. 그래서 물어야 한다. 어떤 사랑인가? 복음적 삶을 가능하게 하는 사랑이 있다. 그 사랑은 어떤 사랑인가?


나의 사랑은 안으로 뭉치는 사랑인가, 밖으로 흐르는 사랑인가? 고여있는 물인가, 흐르는 물인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9절).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의 결정체다. 그 사랑을 세상에 보내셨다. 하나님의 사랑은 보좌에서 세상으로 흘러내렸다. 하나님의 사랑은 안에서 밖으로 흐르는 사랑이다. 샘물과 같다. 하나님의 성품 안에서 샘솟아 세상을 적시었다. 


복음적 삶을 가능하게 하는 사람은 이기적 사랑이 아니다. 이타적 사랑이다. 안으로 우겨쥐는 사랑이 아니라 밖으로 흘려보내는 사랑이다. 나의 소유로 삼는 사랑이 아니라 공유하고 나누는 사랑이다. 이런 사랑이 복음적 삶을 가능하게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독점’할 수 있는가? 그 누구도 하나님의 사랑을 독점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온 세상을 위한 사랑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만 사랑하시는가? 아니다. 다른 사람도 사랑하신다. 교회만 사랑하시는가? 교회 밖 영혼들을 더 안타까움으로 사랑하신다. 성경은 말한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내가 죄인으로 있을 때, 예수 믿기 이전부터 하나님께서는 나를 사랑하셨다. 


복음의 동기는 사랑이며, 복음의 특성은 나누는 것이다. 흘려보내는 것이다. 안에서 밖으로 흐르는 것이다. 성경은 말한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열한 제자를 비롯해 대략 120여명의 신자들에게 성령이 임했다. 이렇게 임한 성령의 불은 120명 공동체에 불붙은 후 예루살렘, 유대 전역, 사마리아, 땅 끝으로 확산되었다. 하나님의 사랑도, 성령의 불도 안에서 밖으로 번져 나가는 것이다. 복음적 삶은 사랑을 나누고 확대하는 삶이다.


복음적 삶을 위한 사랑은 구체적으로 ‘가족개념의 확대’로 나타나야 한다. 직계가족만 가족인 것은 아니다. 혈육만 가족인 것은 아니다. 우리는 오래 전부터 함께 밥을 먹는 사람을 ‘식구’라고 부르고, 식구를 가족과 동의어로 여겨왔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혈통을 갖게 된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이다(엡 2:19). 우리는 함께 밥을 먹는 거룩한 식탁 공동체이다. 복음적 삶을 위한 사랑은 ‘가족개념의 확대’와 함께 ‘신앙 영성의 확대’로 나타나야 한다. 교회의 영성(종교적 영성)에 머물지 않고 ‘사회적 영성’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사회적 영성이란? 우리가 속한 사회에서 “착한 행실”(마 5:16)로 하나님을 드러내고 “세상의 빛”(마 5:14)이 되는 삶을 말한다.  


밖으로 흐르는 사랑은 “주는 사랑”이라는 특성을 지닌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10절).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사랑을 주셨다. 하나님의 사랑은 주는 사랑이었다. 


그런데 ‘주는 사랑’은 쉽지 않다. 받기만 해도 채워지지 않는데 주는 사랑이라니? 주는 사랑이 지치지 않으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11절). 주는 사랑을 지치지 않게 하는 방법은 “서로” 하는 것이다. 주는 사랑을 서로 하면 받으면서 사랑하기에 지치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사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서로 사랑함이 그러하다. 


만일 서로 주는 사랑이 아닌, 서로 받으려는 사랑이라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목마름이 커진다. 불만이 풍선처럼 커지다가 퍼지고 만다. 다른 사람의 사랑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무례함을 범한다. 사랑은 가장 인격적인 행동이기에 비판을 받게 되면 멈추게 된다. 이 때문에 “서로 사랑하라!” “서로 주는 사랑을 하라!”고 권하신 것이다. 


주는 사랑은 용기가 필요하다. 환영받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주는 사랑은 자존심이 상한다. 받는 사랑에 익숙한 사람으로부터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그런 감정을 다스려야 하기에 주는 사랑은 쉽지 않다. 또한 주는 사랑이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받는 사랑”을 소중히 여긴다. 타인의 사랑을 함부로 평가하지 않는다. 사랑이 많다 적다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랑해 본 사람은 겸손해진다. 사랑의 요구 앞에서 초라한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해서 사랑하고 생색내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한다. 결국 주님만을 드러낸다. 


복음적 삶은 사랑으로 가능하다. 복음적 삶을 위한 사랑은 1) 안에서 밖으로 흐르는 사랑이다. 2) 또한 주는 사랑이다. 이런 사랑을 가졌다면 이미 복음적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단지 종교생활이 아닌 복음적 삶을 살아가기 바란다. 복음을 받았으니 삶으로 응답해야 한다. 



양민철 목사

금요저녁묵상

2020.8.7





2 1